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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업센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한때는 미래 산업의 거점, 중소기업의 보금자리로 주목받았던 지식산업센터. 하지만 오늘날 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는 실망과 회의에 가깝다. 이름에 담긴 ‘지식’과 ‘산업’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공실률이 높은 건물, 투자 손실의 상징으로 전락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산의 본래 취지와 변질된 현실
지식산업센터의 원래 목적은 분명했다. 도심 고비용 사무실 문제를 해소하고, 스타트업과 중소 제조업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업무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공간은 점차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분양 대출이 쉬웠고 규제는 느슨했던 만큼, 실사용보다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 결과, 입주기업보다 공실이 더 많은 건물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했다. 어느새 지식산업센터는 ‘텅 빈 사무실 공장’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무분별한 공급과 시장의 왜곡
전문가들은 이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수요 분석 없는 무분별한 공급을 지적한다. 기업 유치 계획도 없이 자족기능이라는 모호한 명분으로 개발된 지산 단지들은 결국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건설사는 빠르게 건물을 지어 분양만 마치면 책임에서 벗어나고, 이후의 관리와 운영은 소유자와 관리단의 몫이 된다. 그 사이 상권 형성과 시설 유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며, 구조적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투자자들이 심각한 손실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적 문제와 산업 정책의 부재
지산의 위기는 단순한 시장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공급 위주의 정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산업 육성 정책의 부재가 핵심 원인이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는 데 집중했고, 시장은 수익률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진짜 기업과 실수요자는 이 공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서울 외곽과 신도시 곳곳의 공실 지산 건물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식산업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지식도 산업도 없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실사용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이제라도 실사용 중심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투자 목적으로 이뤄지는 분양은 제한하고, 입주 업종의 적합성과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이미 공급된 지산 건물에 대해서는 리모델링 허용이나 용도변경 기준 완화 등, 시장 회복을 위한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 단순히 공급량 조절을 넘어, 지식과 산업이 실제로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름값을 하려면, 지산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식산업센터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그곳엔 일터와 산업 생태계, 도시 발전 전략이 함께 담겨야 한다. 지금처럼 규제의 틈을 타는 수익형 분양의 대상이 된다면, 지산의 미래는 없다.
지식산업센터가 진정한 '지식과 산업'의 거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름뿐인 구조를 넘어 내용과 운영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산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재탄생은 공간이 아닌 사람과 기업, 산업이 중심이 되는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